☯ 중용 인간의 맛 제7강 愼獨신독이란?
☞愼신: “삼가한다”라고도 쓰는데, 그 원형은 “삼가다”이다.
“愼獨신독”은 옛말 풀이로서는 “홀로 있음을 삼가다”가된다.
☞君子戒愼乎其所不睹군자계신호기소불도, 恐懼乎其所不聞공구호기소불문.
☞동방인은 내면적 성찰의 도덕성이 없다고 말한 막스베버(1864~1920)의
논의는 틀렸다. 동방사상의 출발은 인간 주체의 내면적 도덕성이다.
☞行弗愧影행불괴영: 홀로 다녀도 자기 스스로 자기 그림자에게
부끄러움이 없다. 北齊사람 劉晝유주, 516~567의작,
(劉子新書유자신서) (신독) 편에서 왔다.
☞獨立不慚影독립불참영, 獨寢不愧衾독침불괴금.
홀로 서 있어도 자기 그림자에게 부끄러움이 없고,
홀로 잘 때에도 자기 이불에게 부끄러움 없다. -(劉晝유주)-
☞나의 그림자, 나의 이불이 곧 나의 하느님이다.
동방사상은 하느님을 나의 삶으로부터 客化객화시키지 않는다.
☞修身수신의 실제 의미가 바로 愼獨신독이다.(중용)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수신을 말하기보다는 신독을 말한다.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다. 이것은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이 아니라
先秦선진사상 전반에 깔린 대전제이다. 키에르케고르에게는 신이라도
있었지만, 자사에게는 신조차 없다. 인간은 참으로 고독하다.
☞신독은 주체의 심화과정이다.
♣茶山다산 丁若鏞정약용,1762~1836: 다산은 실학자가 아니다. 그를
“실학자”부르는 것은 다산을 모독하는 것이다. 그는 중국경학의
집대성자이다. 세계유학사에서 보기 드문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巨儒거유이다.
☞(中庸自箴중용자잠): 다산은 23세 때 정조 임금의 질문에 답한 (중용)를
썼다. 그리고 53세 때 유배지 강진에서(중용자잠)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유교경학의 핵심에 관한 자기의 생각을 말한다.
☞夫恐懼爲物부공구위물, 非無故而可得者也비무고이가득자야.
師敎之而恐懼사교지이공구, 是僞恐懼也시위공구야.
君命之而恐懼군명지이공구, 是詐恐懼也시사공구야.
恐懼而可以詐僞得之乎공구이가이사위득지호?
暮行墟墓者모행허묘자, 不期恐而自恐불기공이자공,
知其有魅魈也지기유매소야.
夜行山林者야행산림자, 不期懼而自懼불기구이자구,
知其有虎豹也지기유호표야.
君子虛暗室之中군자허암실지중, 戰戰栗栗전전률률,
不敢爲惡불감위악, 知其有上帝臨女也지기유상제임여야.
☞다산은 당시 유학자들의 허위를 고발했다. 그러나 그의 하느님은
인간 심성의 도덕적 근거로서 요청된 것이다. 그는 하느님의 존재를
신앙의 대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다산은 대체적으로 그의 형제들과는
달리 반 기독교적 이었다.
♣ 中也者중야자, 天下之大本也천하지대본야,
和也者화야자, 天下之達道也천하지달도야.
☞中중이라는 것은 가운데가 아니라, 희노애락의 감정이 동적 평형을
이루고 있는 性성의 근원적 상태이다.
☞天下천하: 이것은 “천지”와 대비되는 말로서 반드시 인간사회를
가리킨다.
☞주희는 “達道달도”를 “天下古今之所共由천하고금지소공유”라 하여
그 보편성만 강조했다. 그러나 나는 “달도”를 달성되어야 할 인간세의
이상으로 본다.
☞조화를 지향한다고 하는 것은 부조화의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조화의
이상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동방사상에 정적 조화는 없다.
☞저급한 수준의 완벽한 조화는 고등한 수준의 부조화보다
더 저급한 것이다. 부조화는 조화 속으로 항상 수용된다.
♣ 致中和치중화,天地位焉천지위언, 萬物育焉만물육언.
☞中과중 和화를 달성하면, 하늘과 땅이 바르게 자라고, 만물이 잘 자란다.
☞(중용)은 전체가 “에콜로지의 성서” 라고 말할 수 있다.
천지대자연의 性성에 대한 예찬과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책임을 극도로 강조한다. 자연의 정복을 예찬하는 서구사상과 정반대다.
☞도가는 天地自然 “自然자연 스스로 그러함”은 인간의 모든 作爲작위,
그리고 인간의 언어조차도 거부한다. “自然자연”은 無稱之言무칭지언“
즉 언어를 뛰어넘는 언어이다. -(王弼왕필 AD226~249)-
☞인간 문명의 폐해를 이미 BC 6.5세기에 충분히 자각했다는 것은
중국선진사상의 놀라운 성과이다.
서양은 20세기 후반에나 와서 겨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동방의 지혜를 새삼 기억해야 한다.
☞天地천지: 평범한 일반명사가 아니라 “천지코스몰로지”의 줄임말로서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음 양론적 세계관”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인간은 인간 자체로서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칸트의 선험적 주관은
그 한계상황이 명백하다. 인간은 그 자체가 이미 하늘天이요 땅地이다.
인간에 대한 인식론적 전환이 필요하다. -도올-
☞유교는 철저한 휴머이즘 이다. 그것은 자연주의라고 부를 수 없다.
유교의 휴머니즘은 하나님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포섭한다.
※ 제7강 핵심
愼獨신독이란 나의 존재의 모든 행위에 대하여 홀로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신독은 끊임없는 주체의 심화이며, 爲聖위성의 길이며,
修身수신의 도이다. 유교는 천지자연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한다.
젊은이들이여! 신독하라! 그리고 인간과 우주의 조화를 달성하라!
「도올, 중용 강의에서」 용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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