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싯달타와 라훌라
♣ 싯달다 는 6년을 고행하고 붓다가 되였고 6년을 방랑하다 12년 만에
카딜라성 으로 돌아온다. 라훌라가 12살 때이다.
☛ 야쇼다 가 라훌라 를 시켜 아버지 붓다에게 재산을 달라하니
붓다가 라훌라 아들을 데리고 숲으로가 일컫는 말이
(숫타니파타 남전 경장 소부5번째 경전에 나오는 말)
“교만 하지 말라” 늘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너는 현자들을 가볍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모든 사람을 위해 햇불 을 비쳐주는 사람을 너는 존경하고 있느냐?
하면서 시작한다. 음식의 양을 아는 사람이 되어라?
모든 형상은 덧없이 변한다는 것은 알고 마음속에 숨어있는 자만심을 벼려라.
자만의 마음이 사라지게 되면 아들아 너는 조용하고 편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 내가 너에게 물려줄 것은 오직하나 진리(法)밖에 없다.
하고 아들 라훌라 을 출가 시키다. 인도사상 최초의 사비가 되었다.
(사비~7세부터 20세미만의 견습승 을 일컫는 말)
후에 사리자 밑으로 들어가 훌륭한 스님이 된다. (密行第一)
☛ 사리자는~왕사성 부근의 브라흐만 출신 신자야 의 제자였다 가 붓다 밑으로
출가 智慧第一(지혜제일) 의 10대 제자가 된다.
☛ 라훌라는 싯달다 의아들 임에도 불구하고 밀행제일 (密行第一 행동을 조심)
10대 제자가 된다.
☛ 수보리는 급고독장자 (수달다)의 동생(수마나)의 아들 부처님의
첫 설법을 듣고 출가했다.(색상제일 공양제일 무쟁제일 해공제일)로 칭함
금강경은 부처님과 수보리 사이의 문답형식이다.
☯ 사위국(舍衛國)= 코살라왕국. 수도=슈라바스티 에(사위대성)
☛ 슈라바스티 코살라왕국의 수도 싯달타의 석가 족은 바로
이코살라 왕국에 속한 작은 종족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 Sravasti (슈라바스티)⟶ 室羅伐番底 (실라벌번저) 현장의 음역~
실라(室羅)⟶ 신라(新羅)
☛ 실라벌(室羅伐)(슈라바스티)⟶ 徐羅伐(서라벌)⟶ 徐伐(서벌)⟶ 셔월⟶ 서울
☞ 서울(Seoul)이라는 아름도 “금강경”의 무대. 부처님 최대 활약지인
슈라바스티의 정신을 구현하는 도시라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이것은 매우 확고한 성운학적 사실이다.
☯ “금강경“은 슈라바스티(=서울)에 세워진
기원정사(기수급고독원)에서 이루어진 설법이다.
☯ 祇樹給孤獨園 (기수급고독원)~고독한 노인이나 약자 에게 급식을
해주는 사람이 급고독의 장자 이름이 수달다(須達多)혹은 須達(수달)
☞ 須達(수달)~은 왕사성 처형집에 갔다가
부처님을 만나 하안거를 슈라바스티에서 보내시도록 초청한다.
그리고 슈라바스티 근교에 부처님과 그의 제자 1250명이
머물곳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제타태자 을 찾아감)
☛ 부처님 계실 곳은 도심에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이어야 했다.
무소유 걸식 행을 위함이었다.
☛ Jetavana 제타(祇陀) 태자의 숲 =祈樹(기수)
☛ 파사익왕 ( 波斯匿王 Prasenajit )~샤캬족이 소속한 코살라국의 왕
싯달타와 생년월일이 같고 싯달타가 성불했을 때 왕위에 올랐다.
그는 결국 불법에 귀의했다.=(제타의 아버지)
그러나 그의 사후 그의 아들 비두다바(Vidudabha)는
샤캬족에 앙심을 품게 되어 샤캬족을 멸망시켰다.
카필라성의 최후를 싯달타는 생전에 맞이하는 비운을 겪었다.
제타(Jeta)는 파사익의 다른 부인의 아들이다.
☞ 죠지루카스의 영화“스타워즈”에 나오는 “제다이”도 이 “제타”태자의
이름을 변형시킨 것이다.
전승자(戰勝者)라는 어의와 기원정사를 기증한 성스러운 자의 이미지가 겹쳐있다.
☛祇樹 給孤獨園 (기수급고독원)~기수=(제타숲) 제타태자의 소유를 급고독 장자가
팔라고하니 제타태자는 팔 의사가 없어 던진 말이 황금으로 깔아주면하고 갔다.
급고독 장자=(이름은 수달다. 수달.)는 그의 말에 황금으로 제타 숲을 덮어다
그것을 본 제타태자는 제타숲을 기증하고 황금으로는 기원정사를 설립했다.
☛ 祇樹 給孤獨園(기수=“제타숲”급고독원)첫 자(祇)와 막자(圓)을 합해서
祇園精舍 (기원정사) 라 함.
☛ 세존(世尊)=“스승님” “복 많으신 선생님” 정도의 느낌의 말이다.
☯ 싯달타는 35세에 득도 80세에 열반 하였다.
☛ 득도 45년~ 환갑 전 20년은 홀로 유행(遊行) 환갑 후20년은 같이 상주(常住)
☯ 왕사성(王舍城)=라즈기르~부처님 당대의 대국 마가다왕국의 수도에
최초의 가람 영취산에 세워진 죽림정사(竹林精舍)
(양산 통도사 뒷산이 인도의 영취산을 달맞다 해서(靈鷲山)영취산이라 부른다)
☯ 싯달타의 죽음
♣ 遊行經 (유행경)~싯달타의 죽음의 여로를 漢譯(한역)한 경전의 이름
장아함 속에 수록.
♣ 탈발은~단순한 걸식이 아니다.
무소유의 수행을 위한 방편으로 선택된 遊行(유행)의 길이었다.
♣ 80세의 노구를 이끌고 왕사성에서 열반지 쿠시나가르에 이르는 죽음의 여로가
소승경전“대반열반경”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 라즈기르(왕사성)⟶날란다⟶파탈리푸트라(화자성)⟶간지스강을 건넘⟶코티마을⟶
나디카마을⟶바이샬리에서⟶夏安居 (하안거를 보냄)~봄에서 여름에 걸쳐
약3개월간 우기 계절에 보행이 어렵고살생의 우려가 있어 일정한 곳에 머무는
교단생활. 부처님 시대에는 冬安居(동안거)가 없었다.
동안거는 불교가 중국의 추운 지방에 전파되면서 생겨난 후대의 습속으로 경전의 근거가 없다. 동안거제도는 보다 생상적인 방식으로 개선될 수도 있는 것이다.
☯ 바이샬리 릿차비 종족이BC6세기경에 세운 인도 최초의 공화제 국가의 수도
샤캬족도 릿차비종족의 지배영역 속에 있었다. 지금도 인도국회가 열릴 때는
상징적으로 바이실리 연못의 물을 성수로 사용한다.
☯ 암바팔리 망고동산~바이샬리(당시상업도시)의 유명한 창녀
암바팔리가 소유한 망고동산
☛ 부인의 사회적 지위가 낮을수록 창녀의 자위는 높다.
부인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됨에 따라 창녀는 타락하였다.
고대사회의 창녀는 신의 대행자이기도 했으며 최고의 예술인 이었다.
(여성의 역사에 있어서 최초의 자영업자가 창녀였다.
“번벌로 지음 매춘의 역사 서울: 까치.1992”
☛ 창녀인 암바팔리가 부처님을 초대 하였다.
☛ 릿차비종족의 대신들은 창녀인 암바팔리가 부처님을 모실 수 없다하니
암바팔리가 하는말이 바이샬리를 전부 준다 해도 부처님 모실기회는 줄 수 없다
♣ 릿차비종족의 대신들이 세존께 간청을 했으나
세존은 암바팔리와의 약속을 지켰다.
결국 암바팔리는 오계를 받아고 망고동산은 승단에 기증되었다.
☯ 바이샬리의 벨로마 마을에서 부처님이 병을 얻어
1250명의 제자들을 돌려보내고 (하안거에 들어간다)아난만 남긴다.
☛ 악마들까지도 부처님 병을 걱정한다.
♣ 악마여! 나는 나의 入滅(인멸)에 대해 더 이상 마음 괴로워하지 않으니라.
여래는 머지않아 열반에 들 것이니라. 지금으로부터 3개월 후
여래는 열반에 들 것이니라. 하고 떠난다.
♣ 부처님의 말씀 제자들이여! 자신을 의지 처로 하고 자신에게 귀의할 것이며
타인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또 진리를 의지 처로 하고.
진리에 귀의할 것이며. 다른 것에 귀의하지마라.
☯ 부처님이 바이샬리에서⟶반다마을⟶파바마을=(파질나가르)에서
대장장이 아들 춘다(금속세공인 아들)가 음식을 받쳐다.
(①상한돼지고기 음식? ②버섯음식? “수끄라하 맛따빠”)⟶먹고는
설사을 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춘다여!
이 남은 수끄라하 맛따빠는 구덩이를 파 그곳에 모두 묻어라.
춘다여! 이 세상에서 이것을 먹더라도 완전하게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악마와 범천 신들과 인간들 사문과 바리문을 포함하더라도
여래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니라.
☯ 너희들이 춘다 를 위로 하여라. 음식의 시어란 무엇인가?
하나는 푸자타가 시여한 것을 먹고
여래가 위없이 바른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될 때이고.
또 하나는 그것을 먹고 여래가 남김없는 완전한 열반의 세계에 들 때이니라.
이러한 두 가지 음식을 시여한 공덕은 모두 동등하여 서로 우열이 없는데
다른 음식의 시여와 비교한다면 훨씬 큰 이익과 복덕을 가져 오느리라.
(강기희역 대반열반경 서울 민족사 1994)
☯ 부처님의 죽음(입멸지) 쿠시나가르 히란냐바티강⟶沙羅雙樹(사라쌍수)사라수나무 두 그루 사이에 아난은 머리가 북쪽으로 향하도록 죽음의 침상을 차렸다.
이때 한 쌍의 사라수나무는 아직 꽃필 때도 아니데 갑작스럽게
온통 꽃을 피웠다.
꽃잎이 여래의 전신에 한잎 한잎 흩날리며 공양을 드렸다.
허공에는 천상에서만 피는 만다라 꽃이 한들한들 흩날리며 여래께 공양했다.
게다가 천상의 악기가 허공에 울려 퍼지고 음악이 울리면서 여래께 공양 하였다.
☛ 다문제일(多聞第一)25년간 붓다를 시봉한 아난다 의 탁월한 기역력 을
지칭한 말. 모든 경의 시작은 如是我聞 (여시아문)이와 같이 들었다 로
시작하고 聞佛所說 歡喜奉行 (문불소설 환희봉행)으로 끝낸다.
♣ 아난다여! 절대 하늘에서 꽃잎이 떨어지는 이런 일만이
여래를 경애하는 일은 아니다.
♣ 아난다여! 비구와 비구니 우바색과 우바이 이들은 반드시 진리를 몸에 지니고
진리에 따라 진리에 바르게 이르고 진리에 행동할 때만이
여래를 깊게 경애하는 것이 되느니라!
♣ 아난다여! 나의 죽음을 한탄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 아난다여! 내가 항상 말하지 않았더냐?
아무리 사랑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일지라도. 마침내는 달라지는 상태.
별리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찾아오는 것이라고.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찌 피할 수 있겠는냐?
♣ 아난다여! 태어나고 만들어지고 무너지는 것. 그 무너져 가는 것에 대하여
아무리 무너지지 말라고 만류해도 그것은 순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럼 비구들이여!
☯ 이제 마지막으로 너희들에게 고하노라!
만들어진 것은 모두 변해 가는 법이니라. 게으름 피우지 말라.
나는 오직 게으르지 않음으로써만 홀로 바른 깨달음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방일치 말고 精進(정진)하여라.~
이것이 여래께서 이 세상에 남기신 최후의 말씀 이었다.
☯ (여기서 본래 불교의 정신은 (修)수 (닦을 수)이다.)
☛ 佛(불)法(법)僧(승) 三寶(삼보)에의 귀의도 나중에 종단의 조직을 위하여
성립한 매우 부차적인 이론이었다.~(부파불교 시대 때)
☛ 아난다가 부처님을 그릴만한 것을 남겨주시오. 라고 아난다가 말했다.
♣ 아난다여! 그다지 슬퍼할 것 없느니라.
♣ 나의 사후에도 신앙심이 두터운 양가의 자제들은
다음과 같이 여래를 기념할 만한 네 곳을 보면서.
여래를 생각하고 세상을 무상하게 여기면서
종교심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니라.
그것은 어떤 장소이었겠는가?
☯ 아난다여! 여래의 탄생지에서~(룸비니)
여래께서 정각을 얻은 땅에서~(보드가야)
여래의 최초의 설법지에서~(사르나트) 녹야원
그리고 여래의 입멸지에서~(쿠시나가르)
♣ 신앙심이 돈독한 양가의 아들들은 이곳을 보면서
여래를 생각하고 세상을 무상하게 여기면서
깊은 종교심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 대반열반은~환생의 가능성이 없어진 무여열반(無餘涅槃)을 가리킨다.
☯ 스투파=인도말로 “무덤”의뜻.
☛ 埋葬(매장)이나 火葬(화장)이나 屍身(시신)의 동일한 무기질화 과정이다.
그러나 화장이 매장보다 훨씬 더 고귀하고 깨끗한 방법 이었다.
☛ 매장은 한 개의 묘만 가능하지만. 화장은 여러 개의 묘가 가능 하다.
☛ 스투파 을 ⟶음역해서 率塔婆(솔탑파)⟶塔婆 (탑파)⟶塔(답)
☛ 우리 한국인들의 탑의 이해는 무덤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 탑의 의미의 변천이 불교미술사의 중요한 과제상황이며
불교사상의 핵심적 과제다.
☛ 탑의 의미의 변천이 곧 소승과 대승의 문제를 풀어가는 비결의 열쇠다.
☛ 경주의 분황사탑(芬皇寺石塔) 선덕여왕 3년(634)에 건립된 벽돌탑
우리나라의 탑으로 인도의 스투파 개념에 가까게 오는 유일한 유적이다.
♣ 중추성 골격 74개+부속성 골격 126개+이소골 6개= 206개 (부처님의 유골)
♣ 부처님의 유골분배 ~8개 종족으로 분배 되었다.
☛ ① 마가다국 ② 베살리 ③ 카필라바스투 ④ 알라카파 ⑤ 라마마을 ⑥ 베타디파
⑦ 파바 ⑧ 쿠시나가르 ⑨도나 ⑩ 핍팔리바나 (대반열반경 의 정확한 기록)
후에 유골을 다시모아 8만4천 개로분배 되었다. (아쇼카왕때)
♣ 아쇼카왕이 8만4천 개의 싯달타의 뼈를 돌 속에 감추어 두었다는
기록이 우리나라 (삼국유사)에도 실려 있다.
『도올 강의에서』용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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