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無我 (무아)란 무엇인가
☛ 일체개고(一切皆苦)는 모든 것이 고다. ☛ 樂(낙)은 苦(고)의 일종이다.
고의 반대는 마음의 평화~열반은 평화로운 것이다. ☛ 苦(고)↔평화 고요함
☛ 苦(고)는 단순히 고통스럽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모든 한계상황을
총칭하는 근원적이고 우주적인 명제이다.
♣ 싯달타의⟶ 출가 ⟶선정⟶고행⟶사색⟶연기.
♣ 禪定(선정)은⟶ 싯달타에게 영원한 벗어남을 제공하지 못했다.
♣ 苦行(고행)은⟶ 초월주의와 금욕주의는 상통하는데 이는 다 이원론적 분열을
전제로 하고 있어 고(苦)를 가중시킨다.
영 육 이원론의 영혼초월주의 항구적인 아트만을 전제로 한다.
바로 그러한 아트만이 고(苦)의 근원이다.
♣ 思索(사색)⟶보리수 밑의 싯달타는 선정에만 몰입한 것도 아니고
악마와 투쟁한 것도 아니다.
인간의 근원적 문제들을 깊게 깊게 사색한 것이다.
♣ 緣起연기⟶(의존하여)+(같이)+(일어난다.)~긴 것과 짧은 것은 같이 비교 될
때만 생겨나는 개념이다.
♣ 역사적 붓다는 정확하게 12연기를 설하지 않았다.
12연기는 다양한 연기관계를 설한 파편들이 후대에 종합되어 성립된 것이며
그것이 아쇼카3차 결집 이후의 사건이 분명하다.
☛ 고익진(1934~1988) 전남광주출생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서 공부하고
그곳에서 평생을 정진하다 교수로서 생애를 마쳤다.
(아암법상의 체계성 연구) 고 익진 지음
(한국불교전집)의 위업은 그의 필생의 작업 이었다.
☯ 緣起(연기)는~12처로부터 출발. 12처는 6내입 처. 6외입 처~
① 6내입 처: 眼(안) 耳(이 )鼻(비) 舌(설) 身(신) 意(의)~이것: 6根(근)감각주관
② 6외입 처: 色(색) 聲(성) 香(향) 味(미) 觸(촉) 法(법)~저것: 6境(경)감각대상
☛ 십이處(처)⟶ 육육법⟶五蘊(오온)⟶십이緣起(연기)
☛ 연기의 모든 항목을 諸法 (제법)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연기 속의 제법은 불변하는 자기(아트만)를 가질 수 없다
(無我 무아)⟶諸法無我(제법무아)는 연기론에서 도출되는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 中論(중론)~2세기경 인도의 대사상가 용수에의 하여 지어진
중관학 의 대표적 저작. 동국대 김 성철 교수의 번역이 있다.~
(거자즉불거,불거자불거,리거불거자,무제삼거자)
☛ 즉~ 去者則不去 (거자즉불거)~가는 놈인즉 가지 않는다
~(가는 작용(술부)을 떠난
가는 놈(주어)이 따로 있어서 그 가는 놈이 가는 것은 아니다.)
不去者不去 (불거자불거)~(가지 않는 놈은 가지 않는다.)
離去不去者 (리거불거자)~無第三去者 (무제삼거자)~
(가는 놈과 가지 않는 놈을 떠나서 제3의 가는 놈은 없다.)
☛ “가는 놈이 간 다” 는 동어반복의 오류를 법하고 있다.
가는 놈(주부)과 감(술부)을 분리하는 동시에 이런 오류에 빠진다.
“가지 않는 놈이 간 다” 는 모순의 오류이다.
☛ 언어라는 거울(=사유체계)은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 인간의 존재는 五蘊(오온)의 假合(가합)이다. 6☓10에 13승 계의 가합이다.
그것은 나가 아니다~ (무아) (싯달타)
☛ (내가 산다)~내가 먼저 존재하고 그 내가 살아가는 것일까?
나와 삶이 분리될 수 없다면
“내가 산다” 라는 명제도 성립할 수 없다.
☛ (나는 나의 인생을 살아간다)~나의 인생 밖에 “나“라는 존재자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 명제도 성립할 수 없다.
☯ 싯달타는 우리의 사고의 오류를 연기론으로 지적한 것이다.
♣ 同體大悲 (동체대비)~너와나 주관과 객관 언어적 분별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한 몸이 될 때 비로소
☯ 大慈大悲 (대자대비)의 마음이 생겨난다.
♣ 불교의 윤리는 신앙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다.
♣ 무아론은 모든 실체를 무너뜨린다. 그러므로 모든 형이상학이 존립할 수 있는
근거가 무너진다. 불교는 철저히 반형이상학 적이다.
♣ 불교는 현상론이다 ~ 불교의 본체론이란 연기론일 뿐이다.
연기론이 곧 실상론이요.
실상론이 곧 본체론이요.
본체론은 곧 현상론 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실상과 본체가 연기일 뿐이요. 현상일 뿐이다.
이것이 2천여 년 동안 서양철학이 불교를 이해할 수 없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불교는 해결의 형이상학의 붕괴가 일어난 19세기후반부 겨우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나긴 불교의 동면 이었다.
☛ 안티노미 (이율배반) 서로모순 되는 두 명제가 동시에 성립하는 사태
♣ 싯달타는 형이상학적 명제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침묵을 지컸다.
이것이 원시불교의 소박함이다.
☯ 無記 (무기)~기술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 는 뜻.
형이상학적 명제는 無記 (무기)의 대상이다.
☛ 형이상학적 명제는 절대적 해결이 있을 수 없다.
설사 해결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해탈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1권222~3쪽
☛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언어를 부정해야 한다.
이러한 원시불교의 사상에 이미 선불교적 오소가 다 들어있다.
☛ 春城(춘성)스님의 일화는 “벽암록”을 뛰어넘는 우리시대의 공안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깨우침”을 줄 때만이 의미 있는 것이다.
☛ 무아는 언어로 구성된 나의 해체 이다.
☛ 불교는 형이상학을 거부한다.
형이상학은 결국 말장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의 무의미성이 드러난 20세기에나 불교는 이해되기 시작했다.
♣ 비록 진리라 하더라도 그것을 논쟁의 입장으로 삼을 때
그 진리는 집착에 의해 더렵혀진다.
싯달타는 논쟁의 무익함에 대하여 아성적인 자제력을 호소했다.
☯ 연기론은~순관⟶역관⟶사성제⟶팔정도⟶삼학⟶무아⟶무기.
☯ 무아에서 유식으로
♣ 도선사 우이동 삼각산 중턱에 있는 조계종 대찰
☯ 靑潭(청담)스님 (1902~1971) 본명은 李淳浩(이순오)경남진주사람
25세에 옥천사에서 朴漢永 (박한영)을 은사로 득도.
대한불교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
불교의 사회화와 타종교와의 대화에 헌신.
上求菩提 下化衆生의 삶을 살았다.
☛ 청담스님 일화~죽은 송장에게도 몇 시간씩 시달음(염불)을 하는데.
졸지만 산사람인데 얼마든지 할 수 있구 말구!
☛ 慧能(혜능638~713)~중국선종의 제6조. 남종頓敎(돈교)의 개창자.
속성은 노(盧 )씨. 新州(광동성)태생.
神秀 (신수)를 제키고 5조 弘忍(홍인)에게서 依法(의법)을 전수.
광동성에서 대세를 폈다.
『도올 강의에서』용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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