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고 싶어도 줄 수 없을 때가 오기 전에
누구로부터 받는 일보다도
누구에겐가 주는 일이 훨씬 더 좋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에게 주는 일보다
받는 일이 훨씬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탐욕이고 인색이다.
그리고 주지 않고 받기만 하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빚이고 짐이다.
세상살이란 서로가 주고받으면서
살아가게 마련인데 주고받음에
균형을 잃으면 조화로운 삶이 아니다.
주고받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다.
말 한마디, 몸짓 한 번,
정다운 눈길로도 주고받는다.
따뜻한 마음이 따뜻하게 전달되고
차디찬 마음이 차디차게 전달된다.
마지못해 주는 것은 나누는 일이 아니다.
마지못해 하는 그 마음이 맞은편에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덕이란
그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라기보다도
이웃에게 전해지는 그 울림에 의해서
자라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할 것 같다.
덧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언젠가
자신을 일몰 앞에 설 때가 반드시 온다.
그 일몰 앞에서 삶의 대차대조표가
훤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때는 누군가에게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
그때는 이미 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다가 간 자취를
미리 넘어다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그 자신으로서는 볼 수 없다.
평소 자신과 관계를 이루었던
이웃들의 마음에 의해서 드러난다.
이 세상에서 받기만 하고 주지 못했던
그 탐욕과 인색을 훌훌 털어내고 싶다.
한동안 내가 맡아 가지고 있던 것들을
새 주인에게 죄다 돌려 드리고 싶다.
누구든지 나와 마주치는 사람들은
내게 맡겨 놓은 것들을
내가 먼 길을 떠나기 전에
두루두루 챙겨 가기 바란다.
그래서 이 세상에 올 때처럼 빈손으로
갈 수 있도록 해 주기 바란다.
- 법정스님의<아름다운 마무리>에서 -
'無所有 스님'이 떠난 자리
법정(法頂) 스님이 걸어온 56년 불가(佛家)의 길은 비우고 비우고 또 비운 무소유(無所有)의 삶이었다. 스님은 떠나는 마지막 길목에 서서도 행여 '내 것'이 남을까 저어하며 두루 꼼꼼히 살폈다. 그래서 관(棺)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 말라 당부했다. "번거롭고 부질없으며 많은 사람에게 수고만 끼치는 장례 의식"도 하지 말라 했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 '비우고 살아가기'의 아름다움을 깨우쳐줬던 숱한 글들도 스님에겐 빚이었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生)으로 가져가지 않겠다. 내 이름으로 된 책들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법정 스님은 전란을 겪고 대학에 다니던 1954년 싸락눈 내리는 어느 날 집을 나선 그 순간부터 자유인이고자 했다. "휴전 후 포로 송환 때 남도 북도 마다하고 제3국을 선택해 한반도를 떠난 사람들의 심경"이었다. 서울에서 당대 선승 효봉 스님을 만난 뒤 그 자리에서 삭발하고 먹물 옷으로 갈아입고는 "훨훨 날아갈 것 같았다"고 했다.
스님은 그 길로 통영 미래사에 내려가 땔감 수발을 하는 부목(負木)에서부터 불가의 삶을 시작했다. 그 후 반세기 넘도록 스님은 사찰 주지 한 번 지내지 않았다. 아무 조건 없이 기부받은 성북동 요정 대원각을 길상사로 탈바꿈해 창건하느라 한동안 회주를 맡았을 뿐이다.
법정 스님은 197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3년 만에 다시 걸망을 짊어졌다. "민주화운동을 하며 박해를 받다 보니 증오심이 생기더라. 마음에 독(毒)을 품을 순 없어서 산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러고는 '집착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가진 것을 하루 한 가지씩 버리는 삶을 살기로 다짐했다.
지난 50년 산업화와 고도성장의 길을 내달려온 한국 사회는 너나없이 탐욕에 사로잡혀 돈과 물질을 좇는 사회였다. 이 시대에 법정 스님이 뭇사람들에게 이른 '무소유'는 분수를 알고 욕망을 다스리라며 내리치는 죽비 소리였다. 그것은 높고 어려운 불법(佛法)의 가르침을 뛰어넘는 부처의 마음 바로 그것이었다.
법정 스님은 1992년부터는 모든 일기와 메모, 사진까지 불태우고 강원도 산골 화전민 오두막을 빌려 시계도 라디오도 없는 삶을 살았다. 그랬기에 스님은 불자(佛子)들을 넘어 평범한 이들의 등불이 될 수 있었다.
법정 스님은 재작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인생에서 무엇이 남느냐"고 스스로 물었다. "집? 예금? 명예? 아닙니다. 몸뚱이도 두고 갑니다. 죽고 난 후엔 덕(德)이 내 인생의 잔고(殘高)로 남도록 합시다." 스님이 비우고 버리고 나누던 길상사 마당에선 눈 속 매화 향(香)이 몸뚱이마저 버리고 떠나는 스님을 배웅하고 있었다. <조선일보 사설 201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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