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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천부경天符經

by 용 담 2019. 9. 4.

                 (한글 천부경天符經)

一始無 始一 析三極 無盡本
일시무 시일 석삼극 무진본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一積十 鉅無櫃化
일적십 거무궤화

三天二 三地二 三人二
삼천이 삼지이 삼인이

三大三合六 生七八九
삼대삼합육 생칠팔구

運三 四成環五 七一妙衍
운삼 사성환오 칠일묘연
萬往萬來 用變不動本 本心本太陽昻明
만왕만래 용변부동본 본심본태양앙명

人中天地一
인중천지일

一終 無終一
일종 무종일


              (한글 천부경天符經)


一始無 始一 析三極 無盡本
일시무 시일 석삼극 무진본


1. 천지만물의 씨알이 되는 ‘하나’⊙(태극)는 ‘텅 빔’○(무극)에서 시작되었
다. 그렇다고 ‘하나’와 ‘텅 빔’이 본래 둘인 것은 아니다. 본래 한 자리이
나, 그 역할에 따라 두 가지로 불리게 된 것이다. ‘만물’의 뿌리가 되는 측
면에서 보면 ‘텅 빔’은 ‘하나’라고 불리며, 만물을 낳되 만물에 물들지 않
는 ‘하나’의 측면은 ‘텅 빔’이라고 불린다.

 
2. ‘텅 빔’에서 시작한 ‘하나’는 동등한 자격을 지닌 ‘셋’으로 쪼개진다. 먼
저 ‘하나’는 ‘둘’로 분열되며 ‘셋’으로 다시 통합된다. 홀수는 양의 수이니
‘통합’과 ‘발산’을 나타내며, 짝수는 음의 수이니 ‘분열’과 ‘수렴’을 나타낸
다.


3. 그런데 이 동등한 하나들인 ‘셋’은 ‘하나’가 본래 그러했듯이 모두 ‘텅
빔’을 근본으로 삼는다.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4. ‘하늘’○의 씨알이 되는 ‘하나’가 첫째이고, ‘땅’□의 씨알이 되는 ‘하나’

는 둘째이고, ‘사람’△(만물의 대표)의 씨알이 되는 ‘하나’는 셋째가 된다.

이것이 동등한 자격을 지닌 ‘셋’ 사이에 존재하는 위상이다.


一積十 鉅無櫃化
일적십 거무궤화


5. ‘하나’가 쌓여서 ‘열’이 된다. 이 ‘열’은 모든 존재의 완성이자 종식이
되니, 일체 만물의 ‘영원한 목표’가 된다. 모든 존재는 탄생부터 그 완성을
지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공통된 원리이다.

 
‘하나’는 자연히 존재의 완성인 ‘열’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자신의 목적으
로 삼는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모든 존재의 완벽한 완성의
실현은 일체 만물의 종식과 통하게 되니 ‘텅 빔’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
서 ‘열’은 곧 ‘텅 빔’인 것이다.


6. 모든 존재의 뿌리인 ‘하나’가 그러하듯이, 모든 존재의 완성인 ‘열’에 이
르는 모든 존재들 또한 결국 ‘텅 빔’을 다듬어 만든 것이다.


 三天二 三地二 三人二
삼천이 삼지이 삼인이


7. 태초의 ‘하나’가 ‘셋’으로 나뉘었듯이, ‘하늘’의 ‘하나’도 동일한 원리로
‘양○⋅음□⋅중△’의 ‘셋’으로 나누어진다. ‘하늘’과 ‘땅’의 가운데에 ‘사
람’이 존재하듯이 말이다. ‘땅’의 ‘하나’와 ‘사람’의 ‘하나’도 동일한 원리로
‘셋’으로 나누어진다.


 이 셋이 셋으로 모이면 ‘아홉’이 되는데, 이는 발산의 수인 양수 ‘셋’의 합
이니, 하늘⋅땅⋅사람의 모든 변화를 총괄한다. 반대로 그러한 변화의 토
대가 되는 모든 변화가 잠재되어 있는 유형의 ‘씨알’은, 수렴의 수인 음수

‘둘’을 취한다. 하늘의 ‘셋’ 중 ‘둘’을 취하고, 땅의 ‘셋’ 중 ‘둘’을 취하고,

 사람의 ‘셋’ 중 ‘둘’을 취하여, 하늘⋅땅⋅사람의 알짬을 함축한 유형 만물
의 씨알이 이루어진다.


三大三合六 生七八九
삼대삼합육 생칠팔구


8. 위대한 ‘셋’인 하늘과 땅과 사람의 알짬이 되는 ‘둘’을 셋으로 합하면
‘여섯’이 된다. 이 ‘여섯’은 장차 그 잠재력을 최대한 나타내어 ‘아홉’에 이
르도록 성장할 씨알이다. ‘여섯’은 상하ㆍ전후ㆍ좌우의 입체물이니, 하늘과
땅과 사람의 정수인 양극의 ‘둘’이 모여 유형의 씨알을 이룬 것이다. ‘하
나’가 무형ㆍ유형 모든 천지만물의 씨알이듯이, ‘여섯’은 유형의 존재의 씨
알이 되니, 계절로는 ‘겨울’에 해당한다. 여섯은 형이하학적인 하나ㆍ둘ㆍ
셋ㆍ넷ㆍ다섯을 그 안에 품고 있다.


하나에서 열까지의 수를 둘로 나누어 보면, ‘하나ㆍ둘ㆍ셋ㆍ넷ㆍ다섯’은
선천의 수인 ‘낳는 수’(생수)이며, ‘여섯ㆍ일곱ㆍ여덟ㆍ아홉ㆍ열’은 후천의
수인 ‘결실의 수’(성수)이다. 무형의 수인 생수가 ‘중앙의 흙’을 의미하는
‘다섯’을 만나면 형체를 갖추게 되어 성수가 된다. 그래서 성수는 생수보
다 다섯이 많다. 여기서 ‘열’은 후천적인 열을 말하니, 우주의 완성수인 열
이 아니다.


‘여섯’에서 ‘일곱’과 ‘여덟’, ‘아홉’(완성이자 종식의 수인 ‘열’을 제외, 열은
현실의 영원한 목표로서 의미를 지님, 10은 1의 모든 변화 작용의 궁극의
본체이자 목표로서의 0을 말함)이 나오는 과정은 성수의 완성과정이니, 유
형의 후천적 변화이다. 유형의 만물은 모두가 다 여섯에서 아홉에 이르는

탄생ㆍ자람ㆍ수렴ㆍ저장의 과정을 수없이 거치며 변화한다.


선천적으로 보면 ‘하나’에서 ‘열’이 모두 ‘선천적 원상’이며, 후천적으로 보
면 ‘하나’에서 ‘열’이 모두 ‘후천적 형상’이다. 그러나 이 둘을 하나로 종합
해서 말하면, ‘하나’에서 ‘다섯’은 선천적 원상을 대표하며, ‘여섯’에서 ‘아
홉’은 후천적 형상을 대표하며, ‘열’은 ‘하나’의 모든 변화 작용의 궁극의
목표가 되는 ‘텅 빔’을 의미한다.


9. 큰 음의 수인 ‘여섯’은 작은 양의 수인 ‘일곱’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일
곱’이란 계절로 ‘봄’에 해당한다. 또한 ‘일곱’은 같은 양의 수 중 가장 큰
수인 ‘아홉’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아홉’이란 계절로는 꽃이 피고 잎사귀
가 무성해지는 ‘여름’에 해당한다.


또한 ‘아홉’은 작은 음의 수인 ‘여덟’으로 수렴되니, ‘여덟’은 열매를 맺는
계절인 ‘가을’에 해당한다. ‘여덟’은 다시 큰 음의 수인 ‘여섯’으로 수렴되
니, 가을은 겨울로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한 생명의 순환을 끝낸 씨알은
내년의 봄을 기약하게 된다. 이렇게 만물의 탄생과 자람, 수렴과 저장은
쉼 없이 오고 가면서, 우주는 그 생명을 이어간다. 양의 수는 더 큰 양의
수로 발산하며, 음의 수는 더 큰 음의 수로 수렴되는 것, 양은 발산하고
음은 수렴하는 것이 생명 순환의 원리이다.


이러한 발산과 수렴 과정과 별도로 음양의 통합과 분열만으로 고찰해보면,

전후ㆍ좌우ㆍ상하ㆍ중심을 두루 갖춘 ‘여섯’은 음의 수이니, 전후ㆍ좌우ㆍ
상하ㆍ중심(정신)을 두루 갖춘 ‘일곱’으로 나아가며, ‘일곱’은 양의 수이니
다시 동서남북 팔방인 ‘여덟’으로 나누어지며 그 작용을 넓혀 나아가게 된
다. 그리고 ‘여덟’은 음의 수이니 다시 ‘아홉’으로 통합되며 팔방을 주재하

게 된다. 이렇게 ‘아홉’은 모든 변화의 극치를 이루게 된다.


運三 四成環五 七一妙衍
운삼 사성환오 칠일묘연


10. 이러한 후천⋅유형 만물의 수 없는 오고감은 ‘하늘ㆍ땅ㆍ사람’의 ‘셋’

이 ‘넷’과 ‘다섯’으로 변화하는 선천⋅무형의 원리에 의해서 예정되고 인도
된다. 셋에서 넷, 다섯으로 분화하는 과정은 생수의 완성과정이니, 무형의
선천적 수의 분화이다.


유형의 만물은 모두 이러한 하나에서 셋에 이르고 셋에서 다섯에 이르는
원리를 그 안에 선천적으로 갖추고 있다. ‘셋’은 양의 수이니 ‘넷’으로 분
열되며, ‘넷’은 음의 수이니 ‘다섯’⊕(사방을 주재하는 정신)으로 다시 통합
되게 된다.

 
‘하늘’의 맑고 가벼운 기운과 ‘땅’의 탁하고 무거운 기운, ‘사람’의 중간적
인 기운, 이 ‘셋’이 함께 움직임에 자연히 ‘넷’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사
람’에 해당하는 중간적인 기운이 둘로 나누어진다. 이중 ‘하늘’에 가까운
기운은 뜨겁고 상승하는 ‘불’이 되며, ‘땅’에 가까운 기운은 차갑고 하강하
는 ‘물’이 되니, 하늘과 땅 그리고 물과 불의 네 가지 형상이 갖추어진다.

이것이 만물의 원형이 되는 ‘4상’이다.

 
11. 이 네 가지 형상은 가운데 중심축이 있어야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되
니, 중심에 주재자가 생기면서 움직여 ‘다섯’이 된다. 이 ‘다섯’은 하늘에서
‘봄ㆍ여름ㆍ늦여름ㆍ가을ㆍ겨울’이 되며, 땅에서는 ‘쇠ㆍ나무ㆍ물ㆍ불ㆍ토’

가 되며, 사람에서 ‘사랑ㆍ정의ㆍ예절ㆍ지혜ㆍ성실’이 된다. 이상으로 유형

의 만물을 굴리는 무형의 ‘원상’ 즉 ‘순수한 형상’들은 충분히 갖추어진 셈
이다.


12. ‘다섯’이 ‘상하’를 갖추어 전후ㆍ좌우ㆍ중심을 이룬 ‘일곱’은, 하늘⋅땅
⋅사람의 ‘다섯’이 ‘하나’로 모여 이룬 입체물이다. 이는 하늘⋅땅⋅사람의
‘둘’이 모여 이루어진 입체물인 ‘여섯’과는 달리, 중심점(사방을 주재하는
정신)을 갖추고 작용하는 입체물인 ‘일곱’이 된다. 사물은 ‘일곱’이 되어야
온전한 작용을 할 수가 있다. 비로소 만 가지 재주를 부릴 수 있는 것이
다.


그러니 무형의 한 점인 ‘하나’⊙에서 출발한 존재는 ‘일곱’이 되어야 현상
계에서 온전히 작용하는 전후ㆍ좌우ㆍ상하ㆍ중심을 두루 갖춘 유형의 물
건이 된다. 이렇게 볼 때 ‘일곱’은 ‘하나’가 묘하게 불어난 것이다. 이것이
사물이 씨알에서 불어나 입체물이 되어 상하⋅동서남북으로 작용하는 원
리이다.


萬往萬來 用變不動本 本心本太陽昻明
만왕만래 용변부동본 본심본태양앙명


13. 유형의 만물은 무형의 원리들에 의해 인도되며, ‘여섯’에서 ‘아홉’에 이
르는 ‘발산’과 ‘아홉’에서 ‘여섯’에 이루는 ‘수렴’의 음양의 변화를 반복하
며 끝이 없이 생명을 펼쳐낸다. ‘열’이라는 존재의 완성을 목표로 하면서
쉼 없이 변화를 거듭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우주의 실상이다. 우주 안
의 모든 개체들도 그러하고 우주 자체도 그러하다.

 
14. 이렇게 수 없이 오고 가는 중에, 그 작용은 ‘탄생’으로 ‘자람’으로 ‘수

렴’으로 ‘저장’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나, 그러한 변화의 바탕이 되는 ‘텅 빈
하나’는 움직이는 법이 없다. 오직 불변하는 자만이 만변하는 만물을 굴릴
수 있는 법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을 살아가는 이
‘하나’야 말로, 항상 그대로인 우리의 본래자리이자, 우주만물의 뿌리가 되
는 자리이다.

 
15. 생각ㆍ감정ㆍ기운ㆍ오감은 끊임없이 변화하나, 그러한 변화의 바탕이
되는 ‘본심’은 움직이는 법이 없다. 인간에 내재한 ‘텅 빈 하나’인 ‘본심’은
본래 ‘태양’의 광명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 ‘태양’은 신의 모습을 상징한다.

신은 알⊙이니, 태양은 알의 중심이 되며, 태양의 빛이 미치는 범위는 알
의 주변이 된다.


태양은 만물을 꿰뚫어 보는 광명한 ‘지혜’와, 만물을 살리는 ‘자비’, 만물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러한 지혜롭고 자비롭
고 강력한 능력을 지닌 태양과 같은 하느님이 우리 인간의 참 마음의 뿌
리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본래 마음 또한 지혜롭고 자비롭고 강력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부동하는 ‘광명한 본심’에 뿌리를 두되, 만변하는 음양의 현상계에
‘생각ㆍ감정ㆍ기운ㆍ오감’으로 그 작용을 나타내니, 그 진화와 성장에는
다함이 없다. 한 없이 궁극의 완성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人中天地一
인중천지일


16. 우리가 머릿골에 내려와 계신 ‘하느님’인 이 ‘본심’을 온전히 되찾고,

이 본심의 공덕을 생각ㆍ감정ㆍ기운ㆍ오감 차원에서 온전히 구현하게 되
면, 사람의 광명한 ‘하나’ 안에서 하늘과 땅은 ‘하나’로 합해지게 된다. 이
는 억지가 아니요, 본래 ‘하나’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의 ‘본심’은 본래 ‘하늘’에 속하는 것이니, 본심이 회복될수록 우리 내
부의 ‘하늘’은 점점 밝아지며, 우리의 ‘생각ㆍ감정ㆍ기운ㆍ오감’은 본래
‘땅’에 속하는 것이니, 공덕이 원만해질수록 우리 내부의 ‘땅’도 점점 밝아
진다.


인간은 본래 하늘과 땅의 중심이 되니, 본성에 통하고 공덕을 원만하게 닦
을수록, 인간 안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며 작용하게 된
다. 이렇게 이루어진 ‘하나’는 사실 ‘일곱’으로 묘하게 불어난 하나이며, 천
지인이 각각 ‘셋’으로 극치에 이른 ‘아홉’으로 모든 변화의 극치를 이루는
하나이다.


하늘과 땅을 인간 안에서 하나로 합하여 ‘온전한 하나’를 이루게 되면, 불
변하는 ‘하늘’과 하나로 합하게 되어, 영원히 변치 않는 ‘본심’을 온전히
되찾게 되며, 만변하는 ‘땅’과 하나로 합하여 변화하는 시공간 안에서 생
각ㆍ감정ㆍ기운ㆍ오감으로 ‘지혜⋅덕⋅능력’을 ‘때’와 ‘장소’와 ‘관계’에 맞
게 부리게 된다.


하늘⋅땅과 하나 된 사람은, 자신을 닦고 남을 돕기 위해 만 번 오고 만
번 가면서도, 늘 오고 감이 없는 그 자리를 놓치는 법이 없다. 그리하여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서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늘ㆍ땅ㆍ사람ㆍ만물과
조화를 이루는, 가장 균형 잡힌 ‘최고의 선’을 실현하니, 이것이 하늘과 땅
에 참으로 합하는 ‘인간의 길’이다. 우리가 이러한 인간의 길을 걸을 때,

 우리는 시공을 초월하여 계시는 하느님의 진정한 화신인, ‘지금⋅여기ㆍ이
렇게’의 하느님이 되는 것이다.


 一終 無終一
일종 무종일


17. 하늘ㆍ땅ㆍ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묘하게 불어난 ‘하나’(일곱)는 결국
본질상에서 ‘텅 빔’일 뿐이며, ‘텅 빔’은 다시 이 묘하게 불어난 ‘하나’로
자신을 표현해낸다. 따라서 만물의 근본인 ‘하나’와 ‘텅 빔’도 모두 이 묘
하게 불어난 ‘하나’인 ‘일곱’에서 온전해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아홉’으로 대표되는 현상계의 모든 변화는 본래 ‘하나’이며, ‘하나’는
본래 ‘텅 빔’이다. 그러니 ‘열’을 궁극의 이상으로 삼고 ‘아홉’으로 무한하
게 변화하는 현상계 또한, ‘하나’와 ‘텅 빔’처럼 영원한 것이다. ‘텅 빔’과
‘하나’는 ‘아홉’의 변화를 낳고, ‘아홉’의 변화는 ‘텅 빔’과 ‘하나’의 무한한
변화와 다양성을 매순간 현상계에 실현한다.


따라서 참된 ‘인간의 길’은 지금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텅 빔’과 ‘하
나’와 그 표현이 되는 ‘일곱’을 조화롭게 다스려, ‘매순간’ 성장해가는 중
에 이루어진다.

            (윤홍식의 천부경 강의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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