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용 인간의 맛 제34강 自誠明자성명
♣(중용)20장
博學之박학지, 審問之신문지, 愼思之신사지, 明辨之명변지, 篤行之독행지.
有弗學 유불학, 學之弗能弗措也학지불능불조야;
有弗問유불문, 問之弗知弗措也문지불지불조야;
有弗思유불사, 思之弗得弗措也사지불득불조야;
有弗辨유불변, 辨之弗明弗措也변지불명불조야;
有弗行유불행, 行之弗篤弗措也행지불독불조야.
人一能之인일능지, 己百之기백지;
人十能之인십능지, 己千之기천지.
果能此道矣과능차도의, 雖愚必明수우필명, 雖柔必强수유필강.
☞誠者성자, 天之道也천지도야: 誠之者성지자, 人之道也인지도야.
성 그 자체는 하느님의 도이고,
성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도입니다,
☞誠之者성지자, 擇善而固執之者也택선이고집지자야.
성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길은, 선을 택하여 굳게 실천하는 것입니다.
☞博學之박학지, 審問之신문지, 愼思之신사지, 明辨之명변지, 篤行之독행지.
1, 博學之박학지, 넓이 배우십시오,
2, 審問之신문지, 아주 자세히 물으십시오,
3, 愼思之신사지, 아주 신중히 생각 하십시오,
4, 明辨之명변지, 명료하게 사리를 분별 하십시오,
5, 篤行之독행지. 아주 독실하게 실천 하십시오,
☞學問학문: 博學審問박학심문의 준말
思辨사변: 愼思明辯신사명변의 준말
☞학문의 출발은 “물음”이다. 물음이 없는 인간은 배울 수 없다.
☞謙齋鄭歚겸재정선: 우리 조선 산하의 眞景山水진경산수를 그린 대 화가,
1676~1759. 본관은 光山광산. 화가로서 종2품에 오름,
독창적인 문제의식을 지닌 그의 위대성은 실로 20세기 피카소를
초월하는 파격과 다양성을 지닌다.
☞정조는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의 묘역(隆陵융릉)을 화산 기슭으로
이장한 이후 13회에 걸쳐 수원부에 행차하였다. (용주사: 융릉의 원찰)
정조는 1790년 2월10일 한신대학교가 위치한 독산성에 올라
父老부로들에게 묻는다.
행차 시에도 3355번의 擊錚上言격쟁상언에 기꺼이 응하였다.
☞思辨사변: 이라는 것은 지식의 분류된 축적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사람은 모름지기 學問학문과 思辨사변에서 얻은 것은 篤行독행해야만
한다. 知지는 行행에서 완성되고, 行행은 知지에서 그 근거를 발견한다.
☞有弗學 유불학, 學之弗能弗措也학지불능불조야;
배우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배움을 시작하면 능할 때 까지
포기하지 마십시오,
☞有弗問유불문, 問之弗知弗措也문지불지불조야;
붇지 않을 수 있으나, 그것을 알지 못하고서는 놓지 마십시오.
☞有弗思유불사, 思之弗得弗措也사지불득불조야;
생각하지 않을 수는 있으나, 생각하면은 결말을 얻지 못하면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有弗辨유불변, 辨之弗明弗措也변지불명불조야;
부별하지 않음이 있을 지라도, 분별할진데 분명하지 못하면
포기하지 마십시오.
☞有弗行유불행, 行之弗篤弗措也행지불독불조야.
행하지 않음이 있을 지라도, 행 할진데 독실하지 못하면
포기하지 마십시오.
☞人一能之인일능지, 己百之기백지; 人十能之인십능지, 己千之기천지.
타인들이 한 번에 능하다 하면 당신은 백번을 하십시오.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그대 자신은 천 번을 하십시오.
☞果能此道矣과능차도의, 雖愚必明수우필명, 雖柔必强수유필강.
어리석은 자라도 반듯이 밝게 된다. 유약한 자라도 반듯이 강하게 된다.
(중용)제20장은 여기서 끝난다.
☞啓蒙계몽: 어두운 머리를 밝게 만든다.
☞ 騏驥一躍기기일약, 不能十步불능십보; 駑馬十駕노마십가,
功在不舍공재불사.
천리마의 일보가 조랑말의 십보를 커버할 수는 없다. 천리마가 하루에
천리를 간다 해도 조랑말이라도 열흘이면 간다. 공은 오직 쉬지 않음에
있을 뿐이다. (순자)(권학)편
♣(중용)21장
♣自誠明자성명, 謂之性위지성; 自明誠자명성, 謂之敎위지교.
☞ 코스모스 Cosmos: 카오스 Chaos
질서 Order: 무질서 Disorder
문명 Civilization: 자연 Nature
☞子思자사는 자연의 카오스Chaos를 어둠으로 파악하지 않고
誠성으로 파악한다.
☞ 제1장 ↔ 제21장
天命之謂性천명지위성 ↔ 自誠明謂之性자성명위지성
脩道之謂敎 수도지위교 ↔ 自明誠謂之敎자명성위지교
☞性성은 善선과 惡악의 규정성을 거부한다. 성실한 자연에서 문명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지배하는 우리 존재의 느낌의 바탕이 性성일 뿐이다.
☞ 誠성→ 性성→ 明명
誠성 ←敎교 ←明명
☞인간에게 있어서 性성의 과정과 敎교의 과정은 동시적이다.
교육은 문명의 극대화가 아니라 자연의 誠성의 회복이다.
♣自誠明자성명, 謂之性위지성; 自明誠자명성, 謂之敎위지교.
誠則明矣성즉명의, 明則誠矣명즉성의.
誠성에서 明명으로가 性성이고 明명에서 誠으로가 敎교다.
誠성해지면 明명해지고 明명해지면 誠성해진다.
☞서양의 근대적 인간을 특징 짖는 것은 진보의 가치이다.
그러나 동방에서는 인간도 결코 진보하지 않는다. 오직 그 誠성의
본원을 문명에 구현시킴으로써 誠성으로 되돌아갈 뿐이다.
☞誠則明矣성즉명의, 明則誠矣명즉성의.
☞ 코스모스 Kosmos, 말씀 Logos,
어둠 Skotia, 빛 Phos, -요한복음의 구조-
☞코스모스 Kosmos, 카오스Chaos, 자연 Nature
밝음明명, 誠성 -(중용)의 구조-
☞나의 존재의 근원인 誠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神性신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爲聖위성의 구원론이다.
☞칸트철학의 최대난제는 현상과 물자체가 이원론적으로 분리되고,
물가지론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자사는 물자체를 현상에서 분리하지 않고 誠성으로 본다. 자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도덕성의 근원이 자연의 誠성에 있다고 본다.
※ 제34강 핵심
끊임없이 誠성해지려고 노력하는 인간은 반드시 박학, 신문, 신사, 명변,
해야 한다. 그리고 학문과 사변에서 얻은 것을 반드시 독실하게
실천으로 옯겨야 한다. 인간의 실천은 중도에 포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의 본성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誠성에서 明명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진보하지 않는다. 오지 誠성을 부단히 구현
할 뿐이다.
「도올, 중용 강의에서」 용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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